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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c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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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원의 조각
큐브는 정방형의 하얀 육면체로 비교적 파괴하기 쉬운 인상이라, 처음에는 간단한 일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큐브를 깨는 일은 엄청난 진동과 소음을 동반하는 큰 일이었고, 곧 나와 내 주변 공간 전부를 파괴하는 행위처럼도 느껴졌다.
동일한 힘이 작용하여 가공된 온전한 세 면이 정제되지 않은 새로운 면을 지탱해주고 있는 모양이 흥미로웠다.
세 면을 배제하면 존재할 수 없는 제
4의 면은 세 면들이 모여 만드는 복잡한 수식과 그 경우의 수를 이루는 과정과도 같아 보였다.
조각의 온전한 외부 면을 상징하는 세 그림은 각각 프로그램 내의 기본 도형 툴 만을 이용하여 제작되었다.
이 세 그림의 모든 구성은 우연에 의한 것이면서도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미지 도상들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동시에 가상의 사각형에 의해 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각각의 제한된 세계로 존재한다.
새롭게 등장해 조각을 완성시키는 '네 번째 면'은 나머지 그림들과 같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그림들의 각 요소들을 재조합하며 새로운 경우를 찾으려는 30개의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4개의 화면은 만화의 틀을 빌려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이미 정해진 운명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커다란 사각 안의 (관찰되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는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깨어진 조각의 가능성과 그 한계, 나아가 조각의 정체성 자체를 완성된 무엇으로 치환하려는 시선의 노력이다.

작업 내에서 우연한 시도와 조합을 반복하며 마음에 드는 새로운 이미지들을 발견하게 되어 좋았다.
평소에 그렇게 작업하지 않다 보니 그런 방법을 시도할 여유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작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큐브을 깨서 새로운 조각을 찾아내는 이 캠페인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아쉬웠던 점은 생각보다 큐브를 멋지게 전부 깨지 못했다는 것.
워낙 단단해서 깨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하나의 온전한 무언가를 전부 파괴하기엔 그만한 용기가 아직 없는 듯하다.